"이토록 행복한 크리스의 모습은 처음 본다"
한 번 쯤 생각해 볼 화두.
줄넘기를 칸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에도 가져갔다
제목은 '도망친 여자'다.
프랑스 영화의 전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감독.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감독이기도 하다.
현지 기자들이 당시 사건에 대해 물었다.
영화를 보면서 한국을 떠올렸다. 마광수와 장정일 등등. 외설 혐의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 그들은 기존의 문단에서 거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진보가 아니라 자유주의자라고 해도 절대적으로 지지해야 할 표현의 자유를 적극 옹호하기는커녕 작품의 수준이 안 되니까, 지지하면 한통속으로 묶이니까 등의 생각으로 외면했다. 작품의 질을 따져서, 상층이면 보호받아야 하고 쓰레기는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야말로 엘리트주의고 파시즘이다.
늙은 공산주의자답게, 나는 이념적-정치적 기준에 따라 영화를 판단한다. 그래서 내가 최근 12개월 동안 봤던 영화 중 최고는 의심의 여지없이 우디 알로니의 'Junction 48'이었다. 이번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이 영화는 젊은 '이스라엘계 팔레스타인 인'들의 곤경을 다룬다. 이들은 일상적으로 두 전선에서 끊임없이 고투한다. 이스라엘 정부의 압제, 그리고 자신들의 지역 사회 내의 근본주의자들의 압력이다. 주연은 유명한 이스라엘계 팔레스타인 인 래퍼 타메르 나파르가 맡았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팔레스타인 가족들이 여성을 '명예 살인'하는 전통을 조롱한다.
신념을 짊어진 목소리가 반드시 옳으리란 법은 없다. 하지만 목숨을 걸면서까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정상적인 창구는 어째서 없었는지를 돌아볼 만큼의 호소는 되어야하지 않을까. 2016년 한국의 눈에 이 영화는 어떻게 비칠까. 교도관들만 불쌍하다. 지가 선택해서 죽는 건데 뭐가 문제야. 익숙한 비아냥들이 벌써부터 귓전에 울리는 것만 같다. 아니 누군가 목숨을 걸고 호소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스스로의 안위를 버린 수많은 목소리들이 들리지 않고 있는 것처럼.